제목 : 4000원 - 400원 = 일자리 늘어날까, 임금만 줄어들까 | 2009년 02월 17일 11시 51분 4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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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13일 한 강연에서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과 합의하면 최저임금을 10% 정도 덜 받고 일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최저임금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노동계는 “일자리는 늘지 않고 근로 여건만 더 열악해질 것”이라며 반발한다. 정부는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이 발의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2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한바탕 논란이 불가피해졌다.

“돈 몇 푼 더 받는 것보다는 맘 놓고 일할 자리 더 중요”

이래서 찬성

　서울의 한 대학에서 방호원으로 일하는 양모(62)씨는 연초부터 밤잠을 설치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대학 측에서 양씨가 소속된 파견업체에 방호원 인원 감축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양씨는 “친구들이 모이면 일자리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며 “나 같은 늙은이는 몇 푼 더 받는 것보다 그저 맘 놓고 일할 자리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씨는 오전 6시부터 24시간을 일한 뒤 다음 날 쉬는 2교대 근무를 한다. 양씨는 지난해 매달 약 95만원을 받았다. 주당 근로 시간이 법정 기준(40시간)보다 많은 덕분에 최저임금(월 83만6000원)보다 약간 많은 돈을 받고 있다. 양씨는 이 돈으로 생활비(부인과 둘이 살고 있음)와 경조사비를 충당하고 남는 돈은 빚을 갚는 데 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최저임금을 낮춰서라도 양씨와 같은 고령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계도 같은 입장이다.

정부는 네 가지를 개정하려 한다. 근로자 동의를 전제로 60세 이상 근로자는 최저임금을 10% 줄인다. 현재 수습 근로자는 최저임금 10% 깎아 적용하고 있는데 이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자고 한다. 지역별로 차등화하고 근로자의 숙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하자는 것이다.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도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4000원이다. 하루 8시간 기준으로 하루 3만2000원, 월 83만6000원(주 40시간 기준)이다. 여기에다 몇 가지 수당을 더하면 120만원가량 된다.

이기권 노동부 근로기준국장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시적인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라며 “취업을 원하는 60세 이상 고령자 313만 명 중 170만 명이 100만원 미만의 일자리라도 구하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 최저임금을 지급하기조차 버거운 1970년식 기업도 많다”며 “기업의 지불 능력을 무시한 최저임금은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한계 기업에 근로자의 최저생계비 보장 등의 사회적 책임을 떠넘기면 안 된다”며 “정부가 장려금을 통해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저임금이 깎이면서 가구 소득이 줄 경우 근로장려금(EITC)으로 채워야 한다는 뜻이다.

지역별 최저임금을 따로 두려는 이유는 도·농 간 생활비 차이 때문이다. 김성조 의원은 “최저임금은 그 지역에 살면서 최소한 생활에 필요한 것을 급여로 보장하자는 게 취지”라며 “특정 지역의 물가가 서울보다 낮다면 최저임금도 적은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경영계는 기준을 더 세분화하자고 주장한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달 16일 울산상공인 간담회에서 “최저임금은 연령이나 업종에 따라 차이가 있어야 하고,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여성경제인협회·벤처산업협회 등 14개 주요 중소기업단체도 지난달 14일 회장단 회의를 열어 최저임금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박준성 성신여대(경영학) 교수는 “2000년 이후 최저임금은 연평균 11.3%,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2.2~4.7%로 최저임금이 훨씬 많이 올랐고 이 때문에 영세기업 경영이 압박을 받았고, 결국 일자리를 줄이는 역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수습 근로자는 최저임금서 제외

업종·지역·숙련도 따져 탄력 적용

외국에선　1995년 빌 클린턴(민주당)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의회에 연방 최저임금을 시간당 4.25달러에서 5.15달러로 올리는 개정안을 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시카고대 교수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저숙련공의 5% 이상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이 반대 입장이 계속됐고 지난해에 10년 만에 인상됐다. 미국은 주 정부에서 물가와 일자리 사정 등을 감안해 최저임금을 따로 정한다. 연방 최저임금은 권고안 역할을 한다. 캘리포니아·워싱턴·미네소타·위스콘신주 등의 최저임금은 연방 기준보다 높고 오하이오·캔자스주 등은 낮다. 또 대부분의 주에서 학생이나 수습 근로자, 팁을 받는 직원 등의 최저임금은 법정 기준보다 낮다.

일본은 중앙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서 권고안을 제시하고 실제 최저임금은 도 단위의 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서 물가 등을 감안해 결정한다. 업종별로 다섯 가지의 최저임금을 운영한다. 네덜란드는 15~22세 근로자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한다. 22세는 법정 최저임금의 85%, 20세 61.5%, 15세 30% 식이다. 수습 근로자는 단체협약으로 최저임금을 정한다. 벨기에·프랑스·스페인은 수습 근로자를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 ▶근로자의 결혼 여부(그리스) ▶업종(독일) ▶직업 능력(룩셈부르크) ▶직업훈련 이수 여부(영국) 등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기도 한다.

김기찬 기자

“최저임금 지금도 안 지켜져 고용주 횡포만 더 심해질 것”

이래서 반대

　“최저임금은 고사하고 현재 아르바이트 자리나 잘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모(23·여)씨는 서울 신촌의 한 편의점에서 1년째 점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씨의 시간당 임금은 3500원. 올해 최저임금(4000원)은커녕 지난해(3770원) 기준에도 못 미친다. 이씨는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최저임금을 들먹였다가는 곧바로 잘릴 것”이라며 “나처럼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생이 많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씨와 같은 사람을 대변해 최저임금을 깎는 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지난달 4일 인권위는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대한 재검토 권고' 의견서를 냈다. 인권위는 “노인 빈곤율이 매우 심각한데 연령별로 최저임금을 차등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내년에 시행될 연령차별금지법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수습 근로자의 최저임금 감액 적용 기간 연장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남용 위험이 있으며 근로기준법의 수습 기간(3개월) 조항과 배치된다”고 반박했다. 6개월 쓰고 해고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란 뜻이다. 지역별 차등화와 관련, 인권위는 “지역 간 형평성을 저해하고 최저임금이 높은 지역으로 인력이 집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동계 의견도 인권위와 일치한다. 한국노총 정승희 부대변인은 “고령자의 경우 기업주와 합의해야 최저임금 감액을 적용하겠다고 하지만 고령 근로자가 약자인 점을 고려하면 합의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노총 역시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노동 착취를 강화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지금도 최저임금제를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경기도 성남에서 아파트 관리원으로 일하는 박상호(69)씨는 “현행 최저임금(시간당 4000원)을 적용하면 134만4000원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88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 24시간 일하고 다음 날 쉰다. 2교대 근무다. 하지만 사업주가 24시간 근무하면서 7시간씩 휴식을 취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어 놓고 휴식 시간을 무급으로 계산한다는 것이다. 그는 “쉴 공간도 없는데 어딜 가겠느냐”며 “경비실에 그냥 앉은 채 일은 하면서 임금은 못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이 깎이면 임금도 깎일 것이라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유모(19·여)양의 임금은 최저임금과 같이 움직인다. 지난해는 시간당 3770원을 받았고 올해는 4000원으로 올랐다. 만약 최저임금이 10% 깎여 3600원이 되면 자동적으로 내려갈 게 거의 확실하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노인복지 혜택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최저임금마저 깎는다면 노인 가구의 빈곤율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임금을 깎으면 고용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하는데, 임금 삭감은 내수 위축을 가져오고 기업 활동을 떨어뜨려 일자리를 갉아먹게 된다”고 덧붙였다. 근로빈곤층의 최저임금을 낮추면 그 부족분을 근려장려금(EITC)으로 보충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그럴 경우 결국 근로자 임금을 세금으로 메운다는 지적을 받게 될 전망이다.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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